반드시 필요한 두 가지 학력: 學歷과 學力




 가지 학력
두 가지 학력이 있습니다. 學歷과 學力. 
이 둘 중에 어느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인공지능 시대에 이 두 학력은 모두 우리가 반드시 배가시켜야 할 역량입니다. 
이 둘은 꼭 필요합니다. 죽을 때까지 필요합니다. 

학력의 의미
왜일까요?
먼저, 학력의 의미들을 살펴보겠습니다. 

學歷이라는 단어에 대해, 보통 우리는 '출신학교'의 정도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사전 풀이에서도, 학교라는 교육기관에서 수학한 이력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 학력은 곧잘 '가방끈'의 길고 짧음으로 비유됩니다. 
'저학력', '고학력'의 단어 몇 개로 사람이 평가되고 있는 시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졸업증서 몇 장짜리의 하드웨어적 學歷일 뿐입니다. 

그러나, 學歷은 본디 그런 의미가 아니어야 합니다. 
한자사전에서, "공부한 이력"으로 풀어놓았습니다. 
즉, 배움의 경력 혹은 배움의 흔적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학력은 고졸, 대졸 같은 범위를 넘어서며, 여느 몇몇의 공공 교육기관을 거쳐간 것에 한정되지 않아야 합니다.   

學力은 무슨 뜻일까요?
간단명료하게, '배우는 힘'입니다.
한자사전의 의미를 보면, "학문의 실력, 학문의 역량"입니다. 즉, 배우고 묻는 힘입니다. 배우는 것을 지속가능하게 하는 소프트웨어적 힘이 바로 學力입니다. 

흔히 말하듯이, 그러면 이 시대에는 이 學力이 學歷보다 더 중요한 것일까요?
學歷이 없으니 學力을 길러야 한다는 말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배움의 흔적’으로서의 學歷과 ‘배우고 묻는 힘’으로서의 學力.
이 두 가지 학력은 다 필요합니다.

두 학력의 관계
學歷과 學力, 이 두 학력은 필연적으로 붙어 다닙니다. 
學歷 없이 學力이 있을 수 없고, 學力 없이 또 다른 學歷을 만들기는 쉽지 않습니다.

논어 위정편의 글귀를 참고해 보겠습니다.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학이불사즉망, 사이불학즉태)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는 것이 없고,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험하다.

공자가 권고한 이 말은 학문하는 방법, 곧 배우고 묻는 힘을 기르는 방법입니다. 
배우기만 해서도 안되고, 생각하기만 해서도 안됩니다.
배우면 생각해야 하고, 생각하고 나서는 또 배워야 합니다.

여기서 두 가지 학력과 연관지어 생각해 보겠습니다.
생각하지 않고 學歷(배움)만 만들고자 해서는 學力(배움의 힘)이 생기지 않고, 學歷(배움) 없이 생각하기만 해서는 學力(배움의 힘)에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배우고, 묻는 일은 결국 배운 것을 생각해야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學力은 곧 배우고 생각하고 묻는 일련의 과정을 가지는 힘입니다. 

이 과정을 되풀이하면서 우리는 배움의 경력, 배움의 흔적인 學歷을 가지게 됩니다. 
친구와의 관계 속에서, 스승과의 관계 속에서, 부모와의 관계 속에서의 배움을 통해 學歷이 만들어집니다. 

더욱이 우리는 배우고 생각하고 묻는 이 學力을 가지기 위해 특별히 학교라는 제도를 만들어 學歷을 쌓아왔습니다. 우리는 배움의 흔적들의 '學歷' 위에서 '學力'을 증강시키는 것입니다. 
  
學歷이 있기에 學力이 생기고, 學力이 생기니 또 다른 學歷이 생기게 됩니다. 
學力이 學歷을 낳고, 學歷이 學力을 낳습니다. 


인공지능 시대에 꼭 필요한 두 가지 학력
위에서 두 가지 학력의 의미와 그 관계를 살펴보았습니다. 
학교를 다 마친 후에도 우리의 學歷은 지속되어야 합니다. 
학교를 다 마친 후에도 우리의 學力은 지속되어야 합니다 

두 가지 학력 중에 당신은 어떤 학력을 더 중시하고 있습니까?

이미 인공지능 시대에 진입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배우고 나서 생각하거나 묻지 않습니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學力보다 눈에 잘 보이는 學歷을 더 중시합니다. 
배우기만 하면 사회가 정해놓은 졸업장 몇 장의 學歷을 얻을 수 있을 뿐입니다.
반면에, 오로지 學力에만 몰두하면 새로운 배움을 놓칠 수도 있습니다. 

언제부터 우리 사회는 두 가지 학력을 동등하게 취급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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