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한대자전(漢韓大字典) 한자공부 필수 아이템


정민 교수의 『스승의 옥편』(마음산책, 2007)에는 한자 자전 찾는 것에 관하여 괜한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키는 글이 있습니다. 먼저 이 글을 소개하고 『한한대자전』의 머릿말을 갈무리합니다. 

[스승의 옥편] (정민)

한문학을 공부한다고 하면 어려서 서당에 다녔느냐고 묻는 이들이 많다. 정작 한문 공부를 처음 시작한 것은 대학 4학년 여름 방학 때였다. 이기석 선생님과 그때 처음 만났다. 선생님이 물으시면 덜렁대다 틀리기 일쑤였다. 그후 작고하실 때까지 8년을 모시고 공부했다.
 
뜻을 몰라 여쭈면 사전을 찾아보라고 하셨다. 사전에 이런 뜻으로 나와 있다고 말씀드려도 당신 눈앞에서 기어이 다시 찾아보게 하셨다. 무슨 뜻이 있느냐고 물으셔서 이런저런 뜻이 있노라고 말씀드리면 "봐! 거기 있잖아” 하셨다. 의미는 항상 내가 미처 생각지 못한 곳에 숨어 있었다. 지금은 나도 대학원생들과 공부하면서 이 방법을 쓴다. “사전 찾아봐. 무슨 뜻이 있지? 거기 있잖아!"
 
선생님께서 돌아가신 후 댁에 갔을 때, 하도 많이 찾아서 반 이상 말려들어간 민중서림판 한한대자전을 보았다. 12책으로 된 한 화대사전도 손때가 절어 너덜너덜했다. 선생님도 찾고 또 찾으셨구나. 둥근 돋보기로도 한 눈을 찡그려가면서 그 깨알 같은 글씨를 찾고 또 찾으시던 모습이 떠올라 참 많이 울었다.
 
사모님의 분부로 선생님의 손때 묻은 그 책들을 집으로 가져왔다. 헐어 바스라지고 끝이 말려들어간 사전을 한 장 한 장 다리미로 다려서 폈다. 접착제로 붙이고 수선해서 책상밑에 곱게 모셔두었다. 지금도 사전에 코를 박으면 선생님의 체취가 또렷이 느껴진다. 내 조그만 성취에도 당신 일처럼 기뻐하시던 어지신 모습도 생전처럼 떠오른다.
 
한한대자전은 너무 낡아 쓸 수가 없어 책상맡에 두고 바라보기만 하고, 한화대사전은 지금도 자주 애용한다. 그때마다 더 열심히 찾아야지, 더 열심히 찾아야지 하고 생각한다. 그러는 사이 집에서 쓰는 내 한한대자전도 너무 낡아 선생님께서 쓰시던 사전과 비슷한 몰골이 되었다. 학교 연구실에서 쓰는 사전도 많이 낡았다. 이제는 가로쓰기로 된 한한대자전을 마련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 지도 꽤 오래되었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을 한다. 앞으로 나는 몇 권의 한한대자전을 더 너덜너덜하게 만들 수 있을까?
 
선생님이 세상을 뜨신 후에는 김도련 선생님을 모시고 한문 공부를 했다. 나를 앉혀 놓고 예전 공부할 적 얘기를 많이 들려주셨다. 하루는 서당 앞에서 어떤 사람이 헌책을 가지고 나와 팔고 있었다. 우리말로 풀이한 『논어』를 그때 처음 보았다. 황홀했다. 그 사람을 데리고 십여리 길을 걸어와 『논어』를 사달라고 졸랐다. 아버지께서 어머니에게 쌀을 내주라고 하셨다. 놀러 온 아버지의 친구분이 헌책인데 너무 비싸다고, 시내 책방에 가면 그보다 싸게 살 수 있다고 했다. 아버지는 “저 아이가 저 책을 만 냥짜리 책으로 읽으면 만 냥짜리 책이 될게고, 한 냥짜리 책으로 읽으면 한 냥짜리 책이 될 걸세. 책값을 깎겠는가?" 어머니가 쌀을 퍼줄 때 뒤주 밑바닥을 박박 긁는 소리를 들었다. 일제 말 공출이 심해 끼니도 잇지 못하던 때였다.
 
선생님은 그때 그 아버지의 말씀을 잊지 못해 평생을 그 책을 읽고 또 읽었다. 떨어지면 풀칠해서 읽고, 더 낡으면 다시 제본해서 읽었다. 그렇게 읽은 『논어』를 훗날 당신 손으로 꼼꼼히 풀이해서 간행했다. 지금도 이 책을 보면 뒤주 바닥을 박박 긁던 소리가 들린다며 누더기가 다 된 낡은 『논어』를 어루만지며 굵은 눈물을 떨구시던 그날 오후를 잊을 수가 없다.
 
학문의 길에 무슨 왕도가 있겠는가? 단순무식한 노력만 있을 뿐이다. 지금도 마음이 스산하면 선생님의 사전을 쓰다듬고 냄새를 맡는다. 많이 힘들 때는 무작정 포천에 있는 산소로 달려가 한참을 혼자 앉아 있다 오곤 했다. 김도련 선생님은 벌써 여러 해째 병석에 누워 계신다. 가까이에 여쭤볼 스승이 안 계시니, 오늘도 나는 사전을 찾고 또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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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공부하는 자들의 필수 사전 중 하나인 한한대자전(漢韓大字典)의 일부 정보를 갈무리 해 놓습니다. 민중서관(民眾書館)의 1966년 10월 10일 초판이 발행되었고 1997년에 민중서림(民眾書林)으로 바꾸어 개정판이 발행되어 지속적으로 쇄를 거듭해왔습니다. 

먼저, 1966년 초판 머리말 갈무리합니다. 

[머리말] 

  중국에서 우리 나라에 한자(漢字)가 전래(傳來)한 것은 멀리 고조선 시대(古朝鮮時代)의 옛일로 추정(推定)된다고 한다. 그 후 수천 년 동안을 내려오면서 한자는 우리 나라의 문화의 중요한 기둥으로서 큰 구실을 하여 왔으며 오늘날에 있어서도 우리 민족 고유(固有)의 한글과 함께 국자(國字)로서 소화(消化)되고 있는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그런즉 한자에 관한 지식은 비단 중국 문화의 이해(理解)에 관련하는 요건(要件)일 뿐 아니라 우리 나라의 문화의 발자취를 더듬고 나아가서는 장래의 한국 문화의 건전한 전개(展開)를 위하여서도 수유(須臾)도 등한히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보겠다. 

  근자에 항간에는 한글의 전용(專用)과 한자의 폐지(廢止)를 부르짖는 소리가 제고(提高)되고 있고, 또 한편에서는 상용 한자(常用漢字)의 제한과 점진적(漸進的)인 한글 전용을 주장하는 의견이 양립(兩立)하여 의론이 분분(紛紛)한 바 있거니와 그에 대한 시비(是非)는 잠깐 논외(論外)로 한다 하더라도 위의 양론(兩論)의 어느 경우나 한자가 우리의 일상 생활 위에 현실적으로 중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음을 부인(否認)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설혹 한자를 완전히 폐지한다 하더라도 우리 민족의 고전(古典)을 해독(解讀)하고 이해하며 나아가서는 민족 문화의 올바른 진로를 모색(摸索)하자면 그럴수록에 더욱 한자와 한문학(漢文學)에 대한 전문적專門的)인 깊은 연찬(研鑽)이 촉구(促求)될 것으로 여겨지는 터이다. 우리는 이와 같은 뜻에서 해방(解放) 후 이제껏 등한시되어 온 이 면(面)을 늦게나마 헤쳐 보려는 의욕에서 이 자전(字典)의 편찬을 기획(企畫)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한자(漢字)의 특색은 문자가 곧「말」인 점에 있다. 한자가 곧 말이므로 일자 일자(一字一字)가 그대로 문화를 표상(表象)하고 있는 것이며 따라서 한자는 문화의 진전(進展)에 따라 발달 증가(增加)하여 그 총수(總數)는 수만(數萬)에 이르렀고 한 문자의 훈의(訓義)도 수십(數十)에 이르는 것조차 생기게 되었다. 이렇게 복잡한 구조(構造)와 수다(婁多)한 자수(字數)를 가진 한자에 대하여 완벽(完璧)하고 방대(尨大)한 거편(巨篇)의 자전을 이룩하기에는 여러 모로 벅찬 현실(現實)이므로 우리는 우선 그 수록(收錄) 한자의 범위에 있어서 일만 삼천자(一萬三千字) 정도로 좁히고 주로 그 글자들의 자해(字解)에 주력(主力)을 기울이기로 하였다. 이를 위하여서는 우리 나라의 신자전(新字典) 중국의 강희자전(康熙字典)·사해(辭海) 등을 비롯한 정평(定評) 있는 여러 자전을 종합하여 알기 쉽고 자세한 내용을 담기에 힘썼다. 또 이 자전이 아래로는 중등학교(中等學校) 학생을 비롯해서 위로는 일반 사회인까지도 널리 쓰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일상 생활에 직결된 한어(漢語)는 물론 여러 고전(古典) 문적(文籍)에 나오는 숙어(熟語)·성어(成語) 들도 되도록 망라(網羅) 채록(採錄)코자 힘썼다. 

  위와 같은 의도(意圖)로 엮어진 이 책이 우리의 미력(微力)으로 해서 어느 정도의 성과(成果)를 거두었는지는 이 책을 이용하는 여러분의 비판에 맡기겠거니와 앞으로 애용자 여러분의 교시(敎示)를 기다려 수시로 깁고 고쳐 더욱 나은 자전으로 키워 나갈 것을 다짐하며, 이 책이 우리 문화의 올바른 이해와 국학(國學)의 연구를 지향(志向)하는 학도(學徒)에게 비익(裨益)되고 일반 사회인의 실용(實用)에 이바지되기를 바란다. 

  끝으로 이 자전이 고려대학교의 이상은(李相殷) 교수님의 지도로 편찬(編纂) 감수(監修)되었음을 특기하고 심심한 사의(謝意)를 드린다. 

一九六五년 四월  일 

민중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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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1997년 개정판의 머리말입니다. 


[머리말] 

우리 나라 한문 자전(字典)의 자취를 살펴보면, 근세 조선 초기부터 중국 특정 운서(韻書)의 색인(索引) 구실을 하는 옥편이 나돌다가 정조(正祖)때의 〈전운옥편(全韻玉篇)〉에 이르러 비로소 낱낱의 자(字)마다 자음(字音)과 자의(字義)를 달아 자전 (字典)의 효시(嚆矢)를 이루게 되었다. 

1909년 지석영(池錫永)의 <자전석요(字典釋要)>가 간행되면서 자음과 자의를 한글로 표시함으로써 현대적인 자전의 신기원을 이룩하였다고 본다. 이어, 1910년에는 정익로(鄭益魯)의 <국한문신옥편(國漢文新玉篇)>, 1915년에는 조선 광문회 (朝鮮光文會)에서 〈신자전(新字典)을 발간하였고, 이후의 옥편들은 모두 이 〈자전석요나 신자전에서 그 규범을 삼았다고 한다. 

광복 후 여러 종류의 사전이 출판됨에 따라 옥편이나 자전도 사전식이어야 한다는 인식이 높아짐에 따라 당시 민중서관(民衆書館)에서는 1960년 초부터 표제어의 자음과 자의에 그 출처 문헌까지 보여 주는 한편, 표제자가 앞에 오는 숙어 (熟語)도 실어, 명실상부한 한문 사전으로서의 면모를 갖춘 자전 편찬에 착수하여 1966년 비로소 본자전이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이 작업은, 1938년 자전과 자학(字學)을 겸한 육서심원(六書尋源)을 저술한 권병훈(權丙勳) 선생의 자제인 권중악(權重嶽)씨와 당시 편집 부장이었던 유한성(劉漢成)씨가 중추를 이루어 행하였다. 

이래, 30년이 지난 오늘에 이르기까지 현대 자전의 표본으로서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 왔음은 결코 지나친 자찬(自讚)은 아닐 것이다. 한때 한글 전용 문제로 한자에 대한 소양(素養)이 멀어졌던 시기도 있었으나, 근자에 이르러 한문이 정식으로 교과 과정에 오르고, 일반인들에게도 한자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보편화되어 감에 따라 자전도 보다 한문 이해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판단이 서게 되었다. 

이번 개정판(改訂版)에서는 자원란(字源欄)을 설정하여 갑골문(甲骨文)·금문(金文) 및 說文 (설문)에 실려 있는 전문(篆文)·별체(別體)·고문(古文)·주문(籒文) 등을 실어 자체(字體)의 변화를 보이고, 육서(六書)와 문자의 구성 및 원 뜻을 밝혔다. 그리고 사성(四聲)과 운자(韻字) 다음에는 반절(反切)을 표기하여 한자의 본음(本音)을 정확히 알 수 있게 하였으며, 중국어(中國語)를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하여 한어 병음 자모(漢語拼音字母)를 병기(倂記)하였다. 

또한, 중요 한자에는 필순(筆順)까지 보임으로써 보다 쉽게 한자에 접할 수 있도록 하는 동시에, 표제자도 4,000 자를 보충하여 약 16,000 자를 실어 명실 공히 대자전의 면모를 갖추었다. 아무쪼록 이 개정판이 독자들의 한자 소양 증진에 좋은 벗이 되기를 바라면서, 계속 강호 제위(江湖諸位)의 편달(鞭撻)을 바라는 바이다. 

1997년 3월 일 민중서림 편집국 

본 개정판 편찬에 협력한 분들 
劉漢成 韓榮珣 林大植 林昌雨 申正基 
權熙星 趙美慶 權孝明 朴美貞 鄭惠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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