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원 탐구 · 한의학
통풍(痛風),
바람 때문에 아픈 게 아니다
痛風의 風은 '바람'이 아니라 외부에서 침입하는 邪氣다
늘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통풍(痛風)을 처음 배울 때 으레 이런 설명이 따라옵니다. "바람만 스쳐도 아플 만큼 극심한 통증이기 때문에 통풍이라 한다."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어딘가 어색하다는 느낌이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중풍(中風), 산후풍(産後風), 파상풍(破傷風), 역절풍(歷節風)……. 한자 의학 용어에는 '風' 자가 붙는 병명이 유독 많습니다. 만약 풍(風)이 정말 '바람'을 뜻한다면, 이 병들도 모두 바람과 관련된 설명이 붙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중풍을 두고 "바람 맞아서 쓰러진다"고 설명하면 금세 이상하게 들립니다. 분명 다른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한의학에서 風(풍)은 물리적인 바람이 아닙니다. 외부에서 몸 안으로 갑자기 침입하는 사기(邪氣)의 성질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최근 이 의문을 정면으로 다룬 의사학 논문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조재흥·정재영 선생의 연구로, gout라는 서양 의학 용어가 어떻게 통풍(痛風)으로 번역되었는지를 16세기 이후 동아시아 문헌을 통해 추적한 내용입니다. 막연하게 품어온 의문에 명확한 역사적 근거를 제시해 주는 연구였습니다.
서양의 Gout, 어디서 왔나
통풍과 비슷한 증상은 기원전 2640년경 고대 이집트에서도 발견됩니다.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에는 발생 부위에 따라 podagra(발), cheiragra(손), gonogra(무릎)처럼 각각 다른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바람' 연상을 가장 많이 일으키는 영어 단어 gout는 사실 13세기에 처음 등장했습니다. 도미니크 수사 랜돌푸스가 라틴어 gutta(물방울)에서 끌어다 쓴 말로, "체액의 불균형으로 인해 병을 일으키는 물질이 물방울처럼 관절에 떨어진다"는 당시의 병인론을 담은 이름입니다. 바람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gout가 독자적인 질병 명칭으로 자리잡은 것은 훨씬 나중의 일입니다. 1848년 영국 의사 게로드(Garrod)가 혈액 속 요산 결정체를 추출해 증명하면서 비로소 원인이 확립되었습니다.
동양에서 통풍과 유사했던 병명들
동양의학사에서 통풍(痛風)이라는 명칭이 독립된 질병으로 자리잡기 전까지, 비슷한 증상을 가진 여러 이름이 혼재했습니다.
황제내경에 등장. 관절 통증·저림·열감을 두루 포괄하는 넓은 개념. 통풍만을 가리키진 않는다.
금궤요략에 등장. 전신 관절통, 발이 붓는 증상 등 통풍 증상에 더 근접. 처방도 현재까지 쓰인다.
당나라 시대 등장. "호랑이에 물린 듯 극심한 통증"이 야간에 심해지는 증상. 통풍과 가장 임상적으로 유사.
금원대(金元代) 주진형이 독자적 질병으로 개념 정립. 이전까지는 단순 조합어에 불과했다.
이 병명들에 공통으로 쓰인 風은 모두 같은 의미를 가집니다. 물리적 바람이 아니라, 바람처럼 갑자기 발생하고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침투하는 사기(邪氣)의 성질을 비유한 것입니다. 중풍(中風)이 갑작스러운 발병을, 파상풍(破傷風)이 상처를 통한 급격한 침습을 뜻하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Gout는 어떻게 통풍이 되었나
19세기, 서양 의학이 동아시아에 본격적으로 유입되면서 gout를 한자로 어떻게 번역할지가 문제가 되었습니다. 중국과 일본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고, 그 결과가 흥미롭게 갈렸습니다.
중국어 사전에서 gout가 번역된 용어들
| 연도 | 번역어 | 특이사항 |
|---|---|---|
| 1844 | 酒風脚 (주풍각) | 원인(酒)+발병양상(風)+부위(脚) 조합 신조어 |
| 1848 | 脚風 (각풍) | 외국인 선교사 번역 |
| 1866 | 酒風症 (주풍증) | 술·바람·증상의 조합 |
| 1908 | 痛風 (통풍) | 청일전쟁 후 일본어 번역서 유입으로 정착 |
중국은 19세기 내내 기존 동양의학에서 유사한 병명을 찾기보다, 서양의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신조어를 만들었습니다. 번역을 주도한 이들이 동양의학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 선교사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반면 일본은 달랐습니다. 1862년 일본 최초의 영일 번역 사전 『영화대역수진사서』에서 gout를 처음부터 통풍(痛風)으로 번역했고, 이후 일관되게 유지했습니다. 번역 작업을 주도한 이들이 금원대 동양의학의 영향을 받은 난방의(蘭方醫)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기존 동양의학에서 gout와 증상이 유사한 병명을 찾아 대응시키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청일전쟁(1894~95) 이후 수많은 중국 유학생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어 번역 서적을 접하면서, 중국에서도 통풍(痛風)이 정착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일본발 번역어가 한국에도 유입되었습니다.
그래서 통풍은 왜 통풍인가
통풍(痛風)의 風은 '바람'이 아닙니다. 바람처럼 갑자기 나타나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사기(邪氣)가 침습해 일어나는 병이라는 뜻입니다. 중풍·산후풍·파상풍의 風과 정확히 같은 용법입니다.
"바람만 스쳐도 아파서 통풍"이라는 설명은 결과적으로 틀리지는 않지만, 어원은 아닙니다. 통풍이라는 단어는 금원대에 독자적 질병으로 개념이 정립된 동양의학 용어이며, 19세기 일본의 난방의들이 gout의 번역어로 채택하면서 동아시아 전역에 정착한 이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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